산동네의 밤/윤성택 > 아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1,015
어제
861
최대
3,544
전체
298,762
  • H
  • HOME

 

[윤성택] 산동네의 밤/윤성택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235회 작성일 2025-02-23 17:59:16 댓글 0

본문

산동네의 밤/윤성택

춥다, 웅크린 채 서로를 맞대고 있는
집들이 작은 창으로 불씨를 품고 있었다
가로등은 언덕배기부터 뚜벅뚜벅 걸어와
골목의 담장을 세워주고 지나갔다
가까이 실뿌리처럼 금이 간
담벼락 위엔 아직 걷지 않은 빨래가
바람을 차고 오르내렸다
나는 미로같이 얽혀 있는 골목을 나와
이정표로 서 있는 구멍가게에서 소주를 샀다
어둠에 익숙한 이 동네에서는
몇 촉의 전구로 스스로의 몸에
불을 매달 수 있는 것일까
점점이 피어난 창의 작은 불빛들
불러모아 허물없이 잔을 돌리고 싶었다
어두운 방안에서 더듬더듬 스위치를 찾을 때
나도 누군가에게 건너가는 먼 불빛이었구나
따스하게 안겨오는 환한 불빛 아래
나는 수수꽃처럼 서서 웃었다
보일러의 연기 따라 별들이
늙은 은행나무 가지 사이마다 내려와
불씨 하나씩 달고 있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