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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국밥집/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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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40회 작성일 2025-02-21 09:31:0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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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집/이재무

걸직한 국물 떠서 큰 입에 털어놓고
크, 좋다, 감탄을 연발하는 사내들.
동맥이 솟은 두 손 번갈아 이마며 목덜미에
내를 이루며 흐르는 굵은 땀을 훔치는 사내들.
주모의 팽팽한, 반원으로 볼록한 궁둥살 음흉하게
훔쳐보는 사내들. 싸각싸각 깍두기 싯누런 이빨로
베어 삼키고 주방 힐끗 돌아보며 거,
국물 좀 남는 거 없소 원체 국물이 짜서스리 넉살좋게 말하고는
괜시리 허공에 대고 헛기침 두어 번 내뱉는 사내들.
숟가락이 휘어지도록 국밥 가득 떠서 볼우물이 메어지도록
먹성 부리는 사내들의 울뚝불뚝한 팔뚝엔 철근 같은 힘줄 돋아 있다
저 팔뚝들이 지어낸 주택이며 상가 건물이 어디 한 두 채인가
저 팔뚝이 만든 도로 위로 지금 이 순간도 차들은
속도의 쾌감에 전율하고 있을 것이다
옛소, 그러기에 작작 소금을 퍼 넣지 간도 어지간해야지
잔소리 하면서도 국자로 인심을 푹 퍼서는
눈가의 주름 모아 웃음 만들어 건네는 주모의 손등엔
도톰하게 살이 올라 있다 뿌연 김 는개처럼 떠서 자욱한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의 신길동 골목 국밥집엔 팔도에서
올라온 입성 허름한 사내들의 사투리가 사철 내내 붐빈다
국밥으로 급하게 허기 끄고 불룩해진 아랫배
북인 냥 두드리며 만족한 얼굴로 주렴 걷고 문 나서는
저 검붉은 사내들이야말로 우리나라 살림밑천이
아니고 무엇이랴 국과 밥이 만나 이토록 얼큰한 인정
피워 올리는 곳이 국밥집 아니라면 무엇이 있겠는가
그 집 다녀오는 날이면 나도 덩달아 힘이 솟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채 갚듯 치러내야 할
나날의 구차한 일상이야말로
거룩한 종교라는 생각이 거듭 그 무슨 확신처럼 드는 것이다

- 2004년 10월 25일 천년의시작 간행, 이재무 시집 푸른 고집"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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