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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물푸레나무라는 포장마차/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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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39회 작성일 2025-02-15 21:12:0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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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나무라는 포장마차/이정록

버스는 떠났네
처음 집을 나온 듯 휘몰아치는 바람
너는 다시 오지 않으리, 아니
다시는 오지 마라 어금니 깨무는데
아름다워라 단풍든 물푸레나무
나는 방금 이별한 여자의 얼굴도 잊고
첫사랑에 빠진 듯 탄성을 지르는데
산간 멀리서 첫눈이 온다지
포장마차로 들어가는 사람들
물푸레나무 그 황금 이파리를
수많은 조각달로 고쳐 읽으며
하느님의 지갑에는 저 이파리들 가득하겠지
문득 갑부가 되어 즐겁다가
뚝 떼어서 함께 지고 갈 여자가 없어서
슬퍼지다가, 네 어깨는 작고 작아서
내가 다 지고 가야겠다고 다짐하는 늦가을
막차는 가버렸고, 포장마차는 물푸레나무 그림자로 출렁이는데
주인은 오징어의 배를 갈라 흰 뼈를 꺼내놓는데
비누라면 함께 샤워할 네가 없고
숫돌이라면 이제 은장도는 품지 않아
그렇지만 가슴속에서 둥글게 닳아버린 저것이
그냥 지상의 도마 위로 솟구쳤겠나
그래 저것을 나는 난파밖에 모르는 조각배라 해야겠네
너에게 가는 마지막 배라고 출항표에다 적어놓아야겠네
나에게도 함께 노 저어 갈 여자가 있었지
포장마차는 사공만 가득한 채 정박 중인데
물푸레나무 이파리처럼 파도를 일으키며
가뭇없이 사라져도 되겠네 먼바다로
첫눈 맞으러 가도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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