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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목이 부러진 숟가락/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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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25회 작성일 2025-02-15 21:10:3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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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부러진 숟가락/이정록

어머니는 목이 부러진
내 알루미늄 숟가락을 버리지 않으셨다
부뚜막 작은 간장종지 아래에다 놔두셨는데
따뜻해서 갖고 놀기도 좋았다 눈두덩이에도 대보고
배꼽 뚜껑을 만들기도 했다
둥근 조각칼처럼 생겼던 손잡이는
아끼기까지 하셨다 고구마나 감자를 삶을 때
외길로 뚫고 간 벌레의 길을 파내시는 데
제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를 찾아뵐 때마다, 내 몸은
탄저병에 걸린 사과나 굼벵이 먹은 감자가 되어
한 켜 껍질이 벗겨지는 것 같다
숫제, 내가 한 마리 벌레여서
밤고구마나 당근의 단단한 속살을 파먹고 있고
내 숟가락은 아직 생기지도 않았고
어머니는 외할머니 댁 추녀 밑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그런 벌레 알 같은 생각을 꼼지락거리기도 한다
숟가락 손잡이로 둥글고 깊게
나를 파고 나를 떼내다가
지금은 없는 간장종지 아래에
지금은 없는 내 목 부러진 숟가락을
모셔두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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