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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다] 여름 잠/양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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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73회 작성일 2025-02-13 22:55:5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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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잠/양안다

 6월의 벌레들이 과일에 꼬이기 시작하고
 기댈 어깨가 필요했지 부서질 듯 기후가 건조한데
 거리에는 너에 대한 적의가 소문으로 가득했다
 발끝에 힘을 주고 걸어도 내리막은 점점 기울어져
 골목을 헤매다 이곳에 왔어 나의 노래가 멎었던 곳
 창문으로 마주친 눈빛
 음악이 필요한데 사람들은 춤을 멈추지 않았지
 
 어떤 고백은 입을 틀어막아도 새 나오고
 닫히지 않는 귀, 노를 저어 나아가고 싶은데 이미 부러진 마음과
 마음을 떠올리면 왜 아름답고 슬픈 생각만 떠오르는 걸까 마음은 그런 게 아니지
 온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인 다음
 타들어 가는 몸으로 다가가는 것
 그 몸을 안아주지도,
 외면하지도 못하는 것
 그런 게 마음이라면
 
 나, 네 소문 들었어 손목을 가리려 팔찌를 잔뜩 끼운다고 사람들이 알려줬지 네가 사랑하는 사람에겐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있었고
 두 팔에 얼굴을 묻으며,
 울음은 다른 울음에 묻히고
 어깨에서 시작되는 여진, 주체할 수 없는 입술과 그런 입을 가리는 두 손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울다가 울고 울다가 우는,
 
 당분간이라고 믿었던 순간이
 영원토록
 끝없이 전개되고
 마지막 장으로,
 수평선을 향해 노를 젓는 이와
 그림자를 밟고 사과하는 일, 그가 위험과 마주하기를 바랄게
 커튼을 내려 너를 훔쳐보지 못하게 하고
 그가 어둠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없도록,
 나오려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고 깊은 곳으로,
 깊은
 
 심연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악몽에서 마주칠 것들을 흉내 낸다
 네가 잠에 빠지지 않길 바라는 노래, 귓구멍으로 달려드는 벌레 떼, 춤추는 이들이 사라지고
 마음이란 걸 편지에 적지 못해서
 경사는 점점 기울어지는데
 널 뒤따라가지 않는다
 계절과 잠과 계절의 잠을 묻어두고
 몸을 웅크린 채 조용히 흐느낄 곳
 
 네가 손목 위로 새긴 어류의 비늘이
 유영하기 시작하고
 
 꿈속에서도 그를 찾으려는지 너는 잠귀를 환하게 열어둔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 제로 데시벨, 우는 소리 없이 표정으로 울고
 그리고 속삭임
 꿈 작은 꿈
 우는 건 너인데 눈물을 보는 건 언제나 나였다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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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다 / 1992년 충남 천안 출생.  201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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