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나/이윤학 > 아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294
어제
861
최대
3,544
전체
298,041
  • H
  • HOME

 

[이윤학] 칸나/이윤학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284회 작성일 2025-02-09 19:11:09 댓글 0

본문

칸나/이윤학

숭례초등학교 정문 쪽 담 밑에는
오늘도 세 그루 칸나가
그을음 없는 불을 밝히고 있다.

며칠씩 장맛비 내리고
칸나 불은 붉고 끝이 뾰족해
이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새싹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장맛비 내리기 전에
몇 달 동안,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있었다.
광목 잡곡 자루들
골목길에 늘어놓고 앉아 있었다.
됫박에 소복이 잡곡을 담아놓고
담에 뒷머리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성큼성큼 비둘기들 다가와서
광목 잡곡 자루를 축내고 있었다.
하현달 모양 모자 차양
꾹 눌러쓴 할머니 한 분
담에 뒷머리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세상 좋은 공기 혼자 다 잡숩고 있었다.
앞에 놓인 잡곡들 다 뿌려진
드넓은 들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 벌린 채 깊은 잠 들어있었다.

세 그루 칸나 꽃이
세상에 나오기 바로
며칠 전의 일이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