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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학] 무화과/이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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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78회 작성일 2025-02-09 19:08: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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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이윤학

이끼가 피어나고 있다, 이끼가
담을 타고 올라가고 있다
아무도 넘보지 않는 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담 넘어,
무화과나무 열매들 벌어지고 있다

노인이 자전거를 타고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간다
젊은 여자가 자전거 핸들 사이에
목욕 가방을 끼고,
물 묻은 머리카락 휘갈기며
보도블럭 위를 달려간다

담 너머엔 한가로운 여름 벌판이
펼쳐졌으리라, 끝없는 잡풀들 사이로
한 번도 열리지 않은 길이 숨었으리라

벌과 나비가 머물렀다 가는
오목 볼록 꽃무늬 대접들,
뒤엉켜 춤을 추고 있으리라

초록색 대문이 열리고
갑자기, 아이가 뛰어나온다
슈퍼에 가는가, 수돗가에
망초꽃 몇 송이 피어 있다
장독들은 평생 동안의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겉모습뿐이다, 세월뿐이다
장독들은 벌어지는 무화과를 구경하고 있다,
검은 입 속, 이 사이에 낀 침묵들이,
번쩍번쩍 출렁거리고 있다

무화과 열매들은 움츠러들지 못한다
찢어지면서, 시뻘건 속을 드러내 놓는다
누가 저걸, 실과 바늘로 꿰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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