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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백둔정방 요양원에서/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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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95회 작성일 2025-01-30 11:36:4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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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둔정방 요양원에서/이재무

 늦은 아침 기척에 놀라 두근거리는 울퉁불퉁한 산길 아내와 내외하지 않고 오른다

  산수유나무 가지마다 통통 물오른 젖 활짝 드러내놓고 발칙하게 흔들어대는 농염을 아내는 처음인 양 반색하며 호들갑 떤다

  오래전 보이지 않는 꽃 속에 무덤 파고 들어가 누운 사내가 있었지

  뵈는 꽃은 물질이므로 누구라도 그 속에 들어가 누울 수는 없는 일이다

  산달의 나무가 전력투구로 피운 꽃송이 송이 그러나 꽃의 졸업이 모두 열매로 새 학년을 맞는 것은 아니다

  그사이 아내에게는 쉽게 감동하는 버릇이 생기고 웃음도 많이 헤퍼졌다

  열심히 사는 것과 안달하는 것은 다르다  안달을 배웅하고 난 뒤 자연에 자주 마중 나가는 아내의 몸에서 산더덕 내 훅, 끼쳐왔다


  세상에는 존재만으로 은혜 베푸는 것들이 있고 새끼같이 귀한 것들도 있다

  하지만 마음 앓는 나로부터 몸 앓는 아내까지는 손뻗어도 가닿지 못하는 거리가 있다
  이것은 간절함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몸과 몸 간의 거리와 몸과 마음 간의 거리와 마음과 마음 간의 거리를 어찌 셈본으로 측량할 수 있으랴

  시간의 텃밭에서 자란 관계의 풋것들은 서로의 발소리에 얼마나 민감했던가

  계곡 타고 흐르는 물줄기로 빗자루 엮어 알뜰히 쓸어낸 귀의 골목 속으로 갓 태어난 말랑말랑한 말들 뒤뚱뒤뚱 걸어 들어온다

  꽃들의 향기 깔깔깔 박수 쳐대며 허공으로 산개하고 있다

이재무 - 『경쾌한 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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