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이재무 > 아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1,353
어제
861
최대
3,544
전체
299,100
  • H
  • HOME

 

[이재무] 엄니/이재무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427회 작성일 2025-01-30 11:10:34 댓글 0

본문

엄니/이재무

 마흔여덟 옭매듭을 끊어버리고
 다 떨어진 짚신 끌며
 첩첩산중 증각골을 떠나시는규
 살아생전 친구 삼던 예수를 따라
 돌아오리란 말 한 마디 없이
 물 따라 바람 따라 떠나시는규 엄니
 가기 전에 서운한 말
 한 마디만 들려달라고 아부지는 피울음 쏟고
 높은 성적 받아왔으니
 보아달라고 철없는 막내는 몸부림치유
 보시는규, 모두들 엄니에게 못 갚을 덕을
 한꺼번에 풀고 있는
 이웃들의 몸둘 바 모르는 몸짓들인데
 친정집 빚 떼먹은 죄루다
 이십 년 넘게 코빼기도 안 보이던
 막내고모도 갚지 못한 가난
 지 몸 물어뜯으며 저주하구유
 시집오면서 청상과부 울케에게
 피눈물로 맡겨놨다던 열 살짜리 막내삼촌도
 어른 되어 돌아오셨슈
 보시는규, 엄니만 일어나시면
 사는 죄루다 못 만난 친척들의
 그리움 꽃 활짝 필 흙빛 얼굴들을
 보시구서도 내숭떠느라 안 일어나시는규
 지축거리며 바람이 불고 캄캄한 진눈깨비 몰려와
 마루를 꿍꿍 울리는 동지 초이틀
 성성하던 엄니의 기침소리는
 아직 살아 문풍지를 흔드는데
 다섯 마지기 자갈논 가쟁이 모래밭 다 거둬들이던
 그 뜨겁던 맨발 맨손 왜 자꾸 식어가는규
 가뭄 탄 잡초 같은 엄니의 입술을 보며
 크고 작은 동생들 올망졸망 함께 모여서
 지청구 한마디가 듣고 싶은디
 왜 시종 말이 없는규
 궂은 날 지나 갠 날이 오면
 아들 딸네 집 두루 돌아댕기며
 손자손녀들 재롱 시중드는 게 소원이라시더니
 그 갠날 지척에 놔두시고선
 끝끝내 아까워 못 꺼내시던
 한복 곱게 차려입고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