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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새벽 종소리/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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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회 작성일 2025-05-20 17:44:4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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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종소리/신경림
 - 무진 새해 아침에

종소리는 새벽 종소리는 우리들에게
잊으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춥고 지겹던 밤의 군화발소리 채찍소리를
숨으면서 도망치면서 흘린 눈물을
잊으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마침내 맞서 떨쳐 일어선
돌팔매질 아우성 속에서 쓰러진
동무들의 죽음을 잊으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얼어붙은 우리들의 가슴을
녹이려 하지는 않는다
살갗에 묻은 손발에 묻은
때와 얼룩을 씻어내리려 하지는 않는다
산과 들판과 마을을 덮은
피와 죽음의 노래를 지우려 하지는 않는다

똑똑히 똑똑히 보아두라고 말한다
저들의 얼굴을 몸짓을 눈짓을
원수를 원수로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고
친구를 친구로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저들 속임수와 거짓말을 뻔뻔스런 눈웃음을
똑똑히 똑똑히 보아두라고 말한다

종소리는 새해의 종소리는
우리 앞길이 꽃길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새들의 노래와 짐승들의 춤
한데 어우러져라 말하지는 않는다
​    갈갈이 흩어졌던 손 갈렸던 발
얼버무려 얼뜨기 춤추라 말하지는 않는다​
이 손들 발들 하나되어
어둠을 밀어내고 새벽을 불렀음을
기억하라 기억하라고만 말한다

다시 가시밭길로 나서라고 말한다
온 겨레 한덩어리로 춤출 그날 위해
밟을 것은 밟고 꺾을 것은 꺾으라고 말한다
더 굳게 주먹 쥐고 길 떠나라고 말한다
새벽 종소리는 잊으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기억하라 기억하라고만 말한다

* 무진년(1988)(옮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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