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 올려진 시/손세실리아 > 사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67
어제
861
최대
3,544
전체
297,814
  • H
  • HOME

 

[손세실리아] 밥상에 올려진 시/손세실리아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7회 작성일 2025-04-20 20:01:18 댓글 0

본문

밥상에 올려진 시/손세실리아

풀 많은 섬 초도 출신 김진수씨는 여수에서 횟집을 운영하는데요 늘그막에 웬 바람이 불었는지 머리 속이 온통 시로 꽉 차 있습니다 그 모습이 가히 상사의 경지인지라 궁색하기 짝이 없는 시작법 몇 마디 건넸는데요 시 얘기 꺼려하는 낌새를 눈치 챘는지 화제를 틀어 섬에 계신 노모가 올려보낸 반찬이라며 이것저것 권하고 또 권합니다 그 마음이 하도 극진해서 시의 꼬리를 슬쩍 쥐어주고 왔는데요 여러 달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인 그를 대신해 결국 내가 쓰고 마는
시인을 꿈꾸는 이여
그대가 방금 내게 들려준 말이 시다
한 줄의 첨삭도 필요 없는 온전한 시다
외지에 나가 칼질로 먹고 사는 장손을 위해
자갈밭 일구고 평생 물질하셨을
칠순 노모의 휘어진 허리가 시다
주방에 그릇그릇 담긴 어머니의 몸이 바로 시다
그것을 받아 적지 못하면 허당이다
시는 그대 안에 이미 와 있느니
밖에는 없느니

- 『기차를 놓치다』(도서출판 애지, 20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