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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실리아] 기차를 놓치다/손세실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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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8회 작성일 2025-04-20 20:00:5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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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놓치다/손세실리아

골판지 깔고 입주한지 얼마 안 되는
말수 없고 어깨 심히 휜 사내를 향해
눈곱이 다층으로 따개비를 이룬
맛이 살짝 간
나 어린 계집의 수작이 한창 물올랐다
농익은 구애가 사내의 귓불에 가닿자
속없는 물건은 불끈 일어서고

새벽, 영등포역

지하도에 내몰린 딱한 사내와
쫓겨난 비렁뱅이 계집이 눈 맞았는데
기어들어 녹슨 나사 조였다 풀
지상의 쪽방 한 칸 없구나
달뜨고 애태우다
제풀에 지쳐 잠든 사내 품에
갈라지고 엉킨 염색모 파묻은
계집도 따라 잠이 들고

살 한 점 섞지 않고도
이불이 되어 포개지는
완벽한 체위를 훔쳐보다가
첫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고단한 이마를 짚고 일어서는
희붐한 빛,
저 철없는 아침

- ​『기차를 놓치다』(도서출판 애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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