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저 여자!/신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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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자!/신달자
수서역 사거리에서 집집마다 요구르트를 배달하고
아침에서 저녁까지 아파트 귀퉁이에 종일 서서
여린 미소로 남은 것들을 팔고 있는
저 여자
길 위에 서 있는데 헤엄을 치고 있는지
두 팔이 엷은 지느러미가 되어 있네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라 강을 건너왔을까
이미 찢어진 지느러미로 휙 바람을 끌어다가 땀을 닦고 있다
바람하고도 친한지 수서동 시퍼런 바람을 둘둘 말아
주머니에 접어 넣기도 하고 바람 한쪽을 죽 찢어 코를 풀기도 하는데
붉은 콧잔등에 햇살이 앉다가 자신보다 더 뜨거운지 얼른 일어나
달아나는 것 바라보고 있다
오래 바라보았는지
그녀 목에 굳은살 박였을 것
원하지 않는 것들만 몸 안에 다 남아
서 있는 세월 속에서 신발이 재빠르게 닳고 있네
저녁 무렵 어둠이 비키라는 듯 모퉁이로 다가오면
수레를 조용히 끌고 물속을 헤엄쳐 가는데
가끔씩 바퀴 아래에 허리보다 더 지친 지느러미가 툭툭 걸린다
그녀를 바라보는 것은 늘 여기까지다.
- 『살 흐르다』(민음사, 2014)
수서역 사거리에서 집집마다 요구르트를 배달하고
아침에서 저녁까지 아파트 귀퉁이에 종일 서서
여린 미소로 남은 것들을 팔고 있는
저 여자
길 위에 서 있는데 헤엄을 치고 있는지
두 팔이 엷은 지느러미가 되어 있네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라 강을 건너왔을까
이미 찢어진 지느러미로 휙 바람을 끌어다가 땀을 닦고 있다
바람하고도 친한지 수서동 시퍼런 바람을 둘둘 말아
주머니에 접어 넣기도 하고 바람 한쪽을 죽 찢어 코를 풀기도 하는데
붉은 콧잔등에 햇살이 앉다가 자신보다 더 뜨거운지 얼른 일어나
달아나는 것 바라보고 있다
오래 바라보았는지
그녀 목에 굳은살 박였을 것
원하지 않는 것들만 몸 안에 다 남아
서 있는 세월 속에서 신발이 재빠르게 닳고 있네
저녁 무렵 어둠이 비키라는 듯 모퉁이로 다가오면
수레를 조용히 끌고 물속을 헤엄쳐 가는데
가끔씩 바퀴 아래에 허리보다 더 지친 지느러미가 툭툭 걸린다
그녀를 바라보는 것은 늘 여기까지다.
- 『살 흐르다』(민음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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