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빗방울화석/손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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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화석/손택수
처마 끝에 비를 걸어놓고
해종일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나 듣고 싶다
밀린 일 저만치 밀어놓고, 몇년 동안 미워했던 사람 일도 다 잊고,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쫓아다니던
밥벌이 강의도 잊고
빗방울 소리를 듣는 건
오래전 애인의 구두 굽이
길바닥에 부딪는 소리를 듣는 일
가난한 골목길을 따라 퉁퉁 부은 다리로 귀가하는 밤길
긴 통화를 하며
길바닥에 부딪는 똑똑똑 소리를
내 방문 노크 소리처럼 받는 일
툇마루에 앉아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헤아리다가
나는 묵은 편지를 마저 읽으리라
빗방울 받아먹는 귀만큼
귀 깊숙이만큼
꼭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또르르 굴러가던 방울이 쓰윽 들어가 박히던
움푹 팬 자리,
그런 자리 하나쯤 만들어놓고
- 손택수,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창비, 2014)
처마 끝에 비를 걸어놓고
해종일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나 듣고 싶다
밀린 일 저만치 밀어놓고, 몇년 동안 미워했던 사람 일도 다 잊고,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쫓아다니던
밥벌이 강의도 잊고
빗방울 소리를 듣는 건
오래전 애인의 구두 굽이
길바닥에 부딪는 소리를 듣는 일
가난한 골목길을 따라 퉁퉁 부은 다리로 귀가하는 밤길
긴 통화를 하며
길바닥에 부딪는 똑똑똑 소리를
내 방문 노크 소리처럼 받는 일
툇마루에 앉아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헤아리다가
나는 묵은 편지를 마저 읽으리라
빗방울 받아먹는 귀만큼
귀 깊숙이만큼
꼭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또르르 굴러가던 방울이 쓰윽 들어가 박히던
움푹 팬 자리,
그런 자리 하나쯤 만들어놓고
- 손택수,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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