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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잠자리에 대한 단상/복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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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0회 작성일 2025-04-06 21:49:5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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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 대한 단상/복효근

잠자리 두 마리가 엉킨 채로 날고 있다
그러니까 저것들은 시방 흘레붙은 채로 비행을 하는 것이렸다
방중술의 체위로 이름하자면 비행체위쯤 될 터인데
참 둔하다
저리 둔한 순간에는 천적에게 잡히기도 쉬울 터인데
참 아둔하다
가만히 머문 자리에서 사랑을 나누지 않고
그 짓을 하며 날아야 할 만큼 조급한 일이 있었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혼자서 날아온 먼 길과 다시 혼자서 가야 할 먼 길 사이
단 한번뿐인 이 시간
혼자서 날 때와 둘의 날개로 날 때
그 삶과 사랑의 무게 차이를 가늠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네 날개 힘들어 함께 균형 잡아 파닥이며
한 방향과 한 목적지를 향하여 날아가는 그것이,
참 둔하고 아둔한 그것이 삶과 사랑 아니겠느냐고 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싸움하는 자세와 똑 같은 체위로 사랑을 하고
그 순간에도 서로 다른 세계를 그리는 이 음습하고 낮은 세상에다 대고
저 한 쌍은
목숨을 거는 것이 잠자리라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 복효근, 『목련꽃 브라자』(천년의시작,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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