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희] 입동/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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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立冬)/박경희
시든 국화만 설렁설렁하는 고랑 가까이
죽어가는 개 한 마리와
할매 끌어안고 사는 할배
풍 걸린 할매 데리고 죽으러 들어갔던 저수지가 깡, 말랐다
쩍쩍, 갈라지는 게 어디 저수지뿐인가
욕창 난 할매 엉덩이 닦아줄 때마다
풀풀 날리는 똥 가루가 누렇다
벌어진 틈틈이 앉은 피딱지
껴안고 뒹굴던 날을 꼽아봐도 보이지 않는
거시기를 닦는다
그 속에서 새끼 셋 뽑았지만
지금은 서로 눈길만 피하고
땡감 씹은 얼굴로 대문 연 지 오래다
질질, 질긴 목숨 줄처럼 끊어지지 않고
떨어지는 진물 흥건하다
문지방 너머 힘겹게 눈만 감았다 뜨는 개가 멀뚱거리고
두 목숨이 저승 문턱을 두고 앞서라 뒤서라 한다
허물 한 겹씩 벗겨질 때마다
문풍지 앓는 소리
달리다가 미끄러진 다람쥐만이
마당을 쥐었다 편다
- 『벚꽃 문신』(실천문학사, 2012)
시든 국화만 설렁설렁하는 고랑 가까이
죽어가는 개 한 마리와
할매 끌어안고 사는 할배
풍 걸린 할매 데리고 죽으러 들어갔던 저수지가 깡, 말랐다
쩍쩍, 갈라지는 게 어디 저수지뿐인가
욕창 난 할매 엉덩이 닦아줄 때마다
풀풀 날리는 똥 가루가 누렇다
벌어진 틈틈이 앉은 피딱지
껴안고 뒹굴던 날을 꼽아봐도 보이지 않는
거시기를 닦는다
그 속에서 새끼 셋 뽑았지만
지금은 서로 눈길만 피하고
땡감 씹은 얼굴로 대문 연 지 오래다
질질, 질긴 목숨 줄처럼 끊어지지 않고
떨어지는 진물 흥건하다
문지방 너머 힘겹게 눈만 감았다 뜨는 개가 멀뚱거리고
두 목숨이 저승 문턱을 두고 앞서라 뒤서라 한다
허물 한 겹씩 벗겨질 때마다
문풍지 앓는 소리
달리다가 미끄러진 다람쥐만이
마당을 쥐었다 편다
- 『벚꽃 문신』(실천문학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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