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첫눈을 기리는 노래/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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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을 기리는 노래/박형준
너의 캄캄한 내부에 켜 있는
불빛 한점이 내 눈가를 스쳤네.
얼른 고개를 들어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네.
그것들은 채 쓰지 못한 일기 속의 글자들처럼
어지럽게 주변에 흩날렸네.
나는 가만히 손을 펴 눈송이를 하나 받아 보았네.
방금까지 같이 있었던 여자가
녹은 눈송이 속에서 따뜻하게 떠올라왔네.
그렇게 나와 먼 길을 내려가고 있었네.
점점 많은 눈송이들이 지붕을 덮고,
외투깃을 여민 사람들의 목덜미를 헤집으며
거리를 하얗게 뒤덮었네.
사람에게 저런 맑은 한숨이 있다면,
언제나 눈이 내릴 것이네.
눈은, 네 눈 속의 노오란 달이 떠오를 때까지
지켜보던 나의 슬픔과 닮았네.
눈은, 보도블럭 사이에
생명의 꽃씨를 숨겨두고 광채나는 빛을
얇게 터뜨리며 올라올 날이 있을 것이네.
우리가 그런 꽃봉오리라면,
그 밑뿌리가 캄캄한 암흑을 헤쳐나오기까지
허리를 스쳤던 아픔으로 성숙하겠네.
-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창작과비평사, 1997)
너의 캄캄한 내부에 켜 있는
불빛 한점이 내 눈가를 스쳤네.
얼른 고개를 들어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네.
그것들은 채 쓰지 못한 일기 속의 글자들처럼
어지럽게 주변에 흩날렸네.
나는 가만히 손을 펴 눈송이를 하나 받아 보았네.
방금까지 같이 있었던 여자가
녹은 눈송이 속에서 따뜻하게 떠올라왔네.
그렇게 나와 먼 길을 내려가고 있었네.
점점 많은 눈송이들이 지붕을 덮고,
외투깃을 여민 사람들의 목덜미를 헤집으며
거리를 하얗게 뒤덮었네.
사람에게 저런 맑은 한숨이 있다면,
언제나 눈이 내릴 것이네.
눈은, 네 눈 속의 노오란 달이 떠오를 때까지
지켜보던 나의 슬픔과 닮았네.
눈은, 보도블럭 사이에
생명의 꽃씨를 숨겨두고 광채나는 빛을
얇게 터뜨리며 올라올 날이 있을 것이네.
우리가 그런 꽃봉오리라면,
그 밑뿌리가 캄캄한 암흑을 헤쳐나오기까지
허리를 스쳤던 아픔으로 성숙하겠네.
-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창작과비평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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