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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향기/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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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5회 작성일 2025-04-20 15:36:2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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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박형준

빈집이 향내를 풍긴다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죽자
집은 드디어 빈집이 되었다
자물쇠가 꽉 채워진 방 안으로
풀씨들이 넘나들며 꽃이 되었다
자물쇠에 앉아 나비가
날개를 폈다 오므린다
녹슨 자물쇠 속에서
꿀을 찾는 걸까
빈집에 널려진 물건들은
자기 안의 추억이란 추억은
모두 끄집어내는 것 같다
그렇게, 투명해진 것 같다
자물쇠에서도 꽃이 폈다
집이 가벼워지자
집을 에워싸고 있던 사물들도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모든 추억이 내부에서 풀려나와 공기가 되었다
그렇게, 빈집은 이 세상의 향내를 불러들였다
추수철이 되면
빈집으로 들어가 수확을 해야 할 것 같다
폐허가 향기롭게 익어 간다

 -​ 『불탄 집』(천년의시작,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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