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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가을이 올 때/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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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0회 작성일 2025-04-20 15:35: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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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올 때/박형준

뜰에 첫서리가 내려 국화가 지기 전에
아버지는 문에 창호지를 새로 바르셨다
그런 날, 뜰 앞에 서서 꽃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일년 중 가장 흐뭇한 표정을 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그해의 가장 좋은 국화꽃을 따서
창호지와 함께 바르시곤 문을
양지바른 담벼락에 기대어놓으셨다
바람과 그늘이 잘 드나들어야 혀
잘 마른 창호지 바른 문을 새로 단
방에서 잠을 자는 첫 밤에는
달그림자가 길어져서
대처에서 일하는 누이와 형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바람이 찾아와서
문풍지를 살랑살랑 흔드는 밤이면
국화꽃이 창호지 안에서 그늘째 피어나는 듯했다
꽃과 그늘과 바람이 숨을 쉬는
우리 집 방문에서,
가을이 깊어갔다

 -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창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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