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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밥을 찾아/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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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3회 작성일 2025-04-18 21:48: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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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찾아/박노해

이런 밥,
부잣집 개라면 안 먹일거야
기계라도 덜거덕 소리가 날거야
우리들은 식사를 거부하고
마지막 지점,
옥상으로 모였다
바람마저 자그맣게 열리어 타오르는
심장을 얼리려는 듯 차가워
기대인 어깨로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건 굶을 자유뿐이라고
낙엽 같은 웃음으로 배를 불렸다
거치른 얼굴들이 떨며
죽순처럼 일어설 때
구둣발 소리 당당하게
번질한 얼굴들이 무겁게 내리눌러
두려운 눈과 눈 마주하며
먹구름짱 걷어낼 햇살처럼 떳떳한
우리를 확인했다
바위 같은 우리를 누가 흔들까
내 손가락 잡아먹은
톱니바퀴보다 더 힘껏 얽힌
밥 찾는 우리를 누가 가를까
사장님은 우릴 가족처럼 대한다더니
빼빼 말릴 거냐!
쟁기질하는 소도 여물을 먹여야 일하는데
이 밥을 먹고 어찌 일해요!
중도반 3년 근무에
밤마다 피기침하는 영주가 울부짖고
당신네들 건강과잉은 우리의 곯은 육신이고
행복 어린 웃음은 일그러진 좌절과 슬픔이라고
누군가가 외칠 때
오! 당신들,
미끈한 혓바닥에 이젠 더 안 속아
경찰을 부른다 해도 이젠 더 못 참아
무식한 공순이 공돌이 기업 망친다
구속시킨다 해도
이제 더는 더는 물러설 수 없어
저들의 충견들이 몽둥이를 들 때
우리의 벗들은 피투성이가 되고
핏빛이 가슴가슴 저며 들어 비검을 녹이고
눈망울에 불꽃이 튀어 솟아
열여섯 난 명이는 무섭다 울며
수수깡 같은 몸매를 내 야윈 품으로 안겨 오고
표창장을 태우고 모범사원을 태우고
일어섰다
우뚝우뚝 일어선 우리,
밤을 지새며 노동하고 생산하는
하늘 우러러 떳떳한 노동자의 자존으로
우리 밥 찾으러,
더는 물러설 수 없는 노동자의 걸음으로
두터운 벽을 박차고 나섰다
밥을 찾으러
당당하게 맞서 싸우며 울부짖는
오백의 함성이 공단하늘 메아리칠 때
양처럼 순한 표정으로 사정하는
저 숨겨진 발톱을,
저 웃음 뒤의 음모를 우리는 안다
마음까지 풍성한 밥을 놓고
자꾸만 흐르는 눈물
소주잔을 돌리며
지금부터다!
굳게 잡은 손목으로
빛나는 눈동자 마주할 때
눈보라 치는
꽁꽁 얼어붙은 땅 저편으로
다사로운 봄날은
무겁게 아프게 열리고 있었다
 
-  『노동의 새벽』(해냄,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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