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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겨울 호수를 걷는다/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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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1회 작성일 2025-04-09 07:51:5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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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호수를 걷는다/박형준

눈 내린 호수에
발자국이 찍혀 있다
거룻배까지 이어져 있다

먼동이 보고 싶다는 당신과 아침에
희미한 발자국을 따라
겨울 호수를 걷는다

당신은 호수 한가운데에 이르자
우리 지금 그냥 걷다가 서로 모르게 다리가 굳어버렸으면 좋겠어,
하고 말한다
이런 아침엔 밤새 얼지 않으려고
발을 젓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쳐버린
오리도 있지 않을까,
강물에 발목이 얼어붙은 줄도 모르고
날개를 퍼덕이다 졸음에 빠져
끊임없이 꿈만 꾸는 오리
그런 오리가 나였으면 좋겠어,
하고 말한다

호수 건너편 쪽엔
거룻배가 빛에 휩싸여 있다
발자국이 이어진
그 길에
점점 사라지는 먼동을 간직한 채

-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창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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