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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돌담/복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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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1회 작성일 2025-04-06 22:01:1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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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복효근

오래된 이 마을 골목길 돌담
저도 영원히 무너지지 않으리라 믿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 몇 구비는 비뚜름하다
그러나 무너지는 순간까지는
윗돌, 아랫돌 그리고
곁엣돌 서로 단단히 얽혀서
담으로 서 있고 싶을 것이다
돌은 돌에 지나지 않으므로
손잡고 몸 포개어 돌은 비로소 돌담이다
무너지고 싶은 순간이 또한 없었으랴만
윗돌, 아랫돌 너를, 그리고 그를 보아서 이웃들을 보아서
앙다물고 한 세월 버텨왔을 것이다
그 사연이 이 마을 유래담 같아서
돌의 얼굴들이 돌이끼로 늘 푸르다
그래 술 취한 누군가가 오줌을 눌 때 가려주기도 하고
오래 기다림에 지친 사람에게 어깨를 빌려주기도 했을 것이어서
돌담의 표정은 뉘의 연애담처럼 곡진하다
무엇보다 돌담은 틈이 있어
그 틈으로 돌담을 돌담이게 한다
엉성하고 허술한 돌담은 그 틈에
애기똥풀을 기르기도 하고
담쟁이덩굴에게 곁을 내주고
생쥐 가족에게 집을 세 내주기도 한다
언젠가는 그 틈으로
남해의 큰 바람이 찾아왔다가
고요히 잦아들기도 하여
버티면서 그리고 조금씩 무너지면서
돌담은 또 어느 무용담처럼 야젓하기도 하는 것이다

 - 복효근, 『마늘촛불』(도서출판 애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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