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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진] 표범약사의 비밀 약장/문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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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43회 작성일 2025-02-09 11:33:5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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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약사의 비밀 약장/문혜진

  자물쇠를 채운 캐비닛, 감춰 둔 만다린 오렌지 빛 알약들, 태엽장치를 풀고 표범약사는 매일 자신을 위한 처방을 내리지 피가 솟구치는 오전에 세 알,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혈관이 폭발하는 저녁에 다섯 알, 말랑말랑한 귓불, 솜털로 뒤덮인 목덜미를 물어뜯고 싶어 눈알이 튀어나오면, 팔뚝에 진정제를 투여하고 약국 바닥을 긁으며 뒹굴지 식사하러 나간 척 내려 두고

  빌딩 벽을 기어오르다 119구조대원이 출동한 날, 술 취한 손님이 유리창을 깨부수거나 자살을 결심한 전갈자리 눈빛들, 비실대며 들어와 진통제를 요구하는 소녀들은 백이면 백 낙태 수술 환자, 단식원에서 도망친 아이돌 가수의 광기로 불타는 입술, 얼굴에 칼자국 난 젊은 전과자 살의에 번득이는 눈빛, 술병 난 샐러리맨이 토해 낸 오물을 뒤로한 채 표범약사는 약국 문을 닫고 소주를 마신 후 침대에 누워, 황홀한 장면을 불러올 비밀스런 수액을 혈관에 꼽지

  누구나 자기만의 기념비적인 마취제가 필요해! 약국 문은 닫혀있고 의사들은 들고양이 파업 중, 어이없이 죽지 마! 견딜 수 없다면 셔터 뒤에서 거품을 물고 누워 마음껏 울부짖어! 가슴에 투명한 진통 파스를 붙이고 가쁘게 숨 쉬며 달리다 보면 어느 새 건조한 대지와 도시의 직사각형 정원, 자살한 병자들의 서랍이 있는 냉동실에서 양귀비꽃이 필 거야!

 <26회>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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