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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토불/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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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6회 작성일 2025-04-12 10:00:4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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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불(土佛)/문정희

잘 가요 내 사랑
나는 진흙 속에 남겠어요
나무와 나뭇잎이 헤어지듯
그렇게 가벼운 이별은 없나 보아요
당신 보내고 하늘과 땅의 가시를 홀로 뽑아내요
끝까지 함께 건널 줄 알았는데
바람이 휘두르는 칼날에 그만 스러집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조차 때로 집어등(集魚燈)처럼
사람을 가두고 눈멀게 하네요
나 모르는 것을 숨기고 있다가
진흙탕, 가장 깊은 진흙탕에 넘어뜨리네요
더 이상 갈 곳 없어 광활한 심연
꽃도 죄도 거기 녹이며
검은 씨앗으로 나 오래 어둡겠어요
당신이 또 다른 이름이 되어가는 동안
홀로의 등불을 홀로 끄고 켜는
작은 토불 되어 뒹굴겠어요

​- 『응』(민음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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