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어머니의 세상/마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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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세상/마종기
1
낮잠 드신 어머니의 침상 옆에 앉으니
많이 늙으셨어도 아직 고운 모습이신데
몽롱하게 잠에서 깨어 나를 올려다보시더니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셨는지
여보오, 참 오랜만이네요, 하신다.
어디 감추어두셨던 부끄러운 목소리,
내 얼굴 조심해 만지시며 여보오, 여기까지……
희미한 미소가 마른 목을 메이게 한다.
어머니는 어디를 헤매며 사시는 것인지,
제발 그 길만은 평탄하고 아름답기를.
2
결국 하나씩 놓는 것이군요, 어머니.
멋도 예술도 인연도 하나씩 놓으시고
후회 없이 날아가실 준비를 하시는 건지,
빈손과 빈 뼈를 털며 가벼워지시는군요.
간편하게 일어나실 준비도 끝나셨는지
맑은 날의 푸른 허공만 만지시네요.
이승의 모든 벚꽃이 꽃잎을 날립니다.
당신이 남기신 시야가 내 앞길이 됩니다.
외로운 밤 다 땅에 내리시고, 어머니
오랜 기다림 끝내시고 일어나세요.
- 마종기 『마흔두 개의 초록』(문학과지성사, 2015)
1
낮잠 드신 어머니의 침상 옆에 앉으니
많이 늙으셨어도 아직 고운 모습이신데
몽롱하게 잠에서 깨어 나를 올려다보시더니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셨는지
여보오, 참 오랜만이네요, 하신다.
어디 감추어두셨던 부끄러운 목소리,
내 얼굴 조심해 만지시며 여보오, 여기까지……
희미한 미소가 마른 목을 메이게 한다.
어머니는 어디를 헤매며 사시는 것인지,
제발 그 길만은 평탄하고 아름답기를.
2
결국 하나씩 놓는 것이군요, 어머니.
멋도 예술도 인연도 하나씩 놓으시고
후회 없이 날아가실 준비를 하시는 건지,
빈손과 빈 뼈를 털며 가벼워지시는군요.
간편하게 일어나실 준비도 끝나셨는지
맑은 날의 푸른 허공만 만지시네요.
이승의 모든 벚꽃이 꽃잎을 날립니다.
당신이 남기신 시야가 내 앞길이 됩니다.
외로운 밤 다 땅에 내리시고, 어머니
오랜 기다림 끝내시고 일어나세요.
- 마종기 『마흔두 개의 초록』(문학과지성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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