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문인수 > 마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281
어제
861
최대
3,544
전체
298,028
  • H
  • HOME

 

[문인수] 지네/문인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165회 작성일 2025-02-05 10:02:06 댓글 0

본문

지네/문인수
  서정춘전(傳)
 
  어머니는 그때 만삭에 가까웠다.
  아버지와 어떤 사내가 드잡이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한사코 싸움을 말렸는데 그만
  누군가의 팔꿈치에 된통 떠받쳐 벌러덩 자빠져버렸다.
 
  나는 태중에서부터 늑골 아래가 아파 몹시 울었다. 세상에 툭, 떨어지자
  냅다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잠시도 그치지 않고
  새파랗게, 새파랗게 질리며 울었다.
  1941년생, 나는 아직도 피고름 짜듯 가끔, 찔끔, 운다.
 
  난 지 삼칠일 만에 늑막염 수술을 받았다.​
  난 지 두 돌 만에 어머니가 죽었다.
  마부 아버지와 형들은 모두 거구였지만 배냇앓이 때문일까, 젖배를 곯았기 때문일까, “나는 평생 삼단(三短)이다. 체구가 작고, 가방끈이 짧고, 시인 정 아무개의 말처럼

  '극약 같은 짤막한 시'만 쓴다.”
 
  가난이야 뭐 본래대로 바짝 웅크린 채 견디면 된다.
 
  당시엔 당연히 가슴 쪽에 나 있던 수술자국이 이 시각, 
  왼쪽 등뒤 주걱뼈 한뼘 아래까지 와 있다. 생각건대,
  이 징그러운 흉터야말로 몸을 두고 공전하는 기억이지 싶다, 궂은 날,
  지금도 수천의 잔발로 간질간질간질간질 세밀하게 기면서
  씨부럴,
  썩을 놈의 슬픔이 또, 온다, 간다.
 
 
—문인수 시집 “배꼽”(창비, 200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