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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2월/문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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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5회 작성일 2025-04-16 11:12:0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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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문인수


그대 생각의 푸른 도화연필 같은 저녁이여.
시린 바람의 억새 사이사이가 자디잘게자디잘게 풀린다.
나무와 나무 사이,
나무와 억새와 바위 사이가 또한 거뭇거뭇
소문처럼 번져 잘 풀리면서
산에 있는 것들 모두
저 뭇 산의 윤곽 속으로 흘러들었나, 불쑥불쑥 지금 가장 확실히 일어서는 검은 산아래
저 들판 두루 사소한 것들의 제방 안 쪽도 차츰 호수 같다.
다른 기억은 잘 보이지 않는 저녁이여.
세상은 이제 어디라 할 것 없이 부드러운 경사를 이루고
그립다, 그립다, 눈머는구나
저렇듯 격의없이 끌어다 덮는 저녁이여.
산과 산 사이, 산과 마을과 들판 사이
아, 천지간
말이 없었다 그대여.
마음이 풀리니 다만 몸이 섞일 뿐인 저녁이여.

-  『동강의 높은 새』(세계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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