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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란] 법성포 여자/문병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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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5회 작성일 2025-04-12 10:18:5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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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포 여자/문병란

마이가리에 묶여서
인생을
마이가리로 사는 여자

주막집 목로판에 새겨온 이력서는
그래도 화려한 추억
항구마다 두고 온 미련이 있어
바다 갈매기만도 못한 팔자에
부질없는 맹세만 빈 보따리로 남았구나.

우리 님 속 울린
빈 소주병만 쌓여가고
만선 소식 감감한
칠산 바다 조기떼 따라간 님
법성포 뱃사공은 영 돌아오지 않네.

어느 뭍에서 밀려온 여자
경상도 말씨가 물기에 젖는데
알뜰한 순정도 아니면서
집 없는 옮살이 바닷제비
서쪽 하늘만 바라보다
섬 동백처럼 타버린 여자야

오늘도 하루 해
기다리다 지친 반나절
소주병을 세번 비워도
가치놀 넘어서 돌아올 뱃사공
그 님의 소식은 감감하구나.

진상품 조기는 간 곳 없고
일본배 중공배 설치는 바다에
허탕친 우리 님,
빈 배 저어 돌아올
굵은 팔뚝 생각하면 울음이 솟네.

진종일 설레는 바람아
하 그리 밤은 긴데
축축히 묻어오는 눈물
여인숙 창가에 서서
미친 바다를 보네
출렁이는 우리들의 설움을 보네.

뱃길도 막히고 소식도 끓기고
징징 온종일 우는 바다
니나노 니나노
아무리 젓가락을 두들겨보아도
얼얼한 가슴은 풀리지 않네.

용왕님도 나라님도 우리 편 아니고
조기떼도 갈치떼도 우리 편 아니고
밀물이 들어오면 어이할거나
궂은비 내리면 어이할거나.

오 답답한 가슴 못 오실 님
수상한 갈매기만 울어
미친 파도를 안고
회오리바람으로 살아온 여자
만선이 되고 싶은 밤바다
텅 빈 법성포 여자의 몸뚱이도
미친 바다처럼 출렁이고 있구나.

-​『땅의 戀歌』(창작과비평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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