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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안개 노인/문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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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7회 작성일 2025-04-12 10:15:4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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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노인/문정희

안개 벗어나니 또 안개
이윽고 아름다움도 위험도 없는 허허벌판이다
영원한 잠이 바짝 쫓는 것 말고는 급할 것이 없다
걸어온 길에 대해 할 말은 좀 있지만
노동력 없는 무산자 계급으로 그만 입 다물기로 했다
무릎과 치아의 통증에다
핏빛 네온 휘황한 자본주의를 칙칙하게 만든 죄로
그늘에서 어슬렁거린다
그래도 정체불명의 이름 어르신이라 어르며
지하철과 고궁이 두루 공짜 아닌가
장수 시대 알토란 같은 의료보험을 잘라먹는다고
한쪽에선 폐기물 보듯 하지만
파고다공원을 차지한 이도 있다 한다
까짓것! 오늘 점심에는 식판을 들고 굽은 어깨로
절이나 교회의 무료 급식대 앞에 줄이나 서 볼까
공동묘지 비슷한 색깔의 검버섯 핀 얼굴로
얻어먹는 한 끼의 선심은 얼마나 새로운 맛일까
언제부터 나이가 곧 늙음이 되고
늙음은 곧 나쁜 것이 되었을까
갈수록 배울 것 많고 난생처음 아닌 곳도 없다

- ​『응』(민음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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