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황선생님/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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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생님/도종환
사월 그날이 오면 마당조회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혁명공약 몇 줄이
책의 등짝마다 낙인처럼 박혀나오던 시절인데
까까머리들 모아놓고
교장선생님은 황 선생님을 조회단에 부르셨다.
대학 다니시던 때 맨주먹 총부리에 까이우며
몸 분지른 선생님이라 하셨다.
우리가 다니던 그 학교 울타리엔
유독 버드나무가 많았고
버드나무처럼 몸이 가는 황 선생님은
조회단에 오르셔서 느리고 느린 사투리로
차돌만하게 보이는 주먹을 들고
몇 번인가 자유라는 말씀을 하셨고
운동장 조회가 끝나고 사회시간이 되어서도
한 시간 내내 그 말씀만 더 하시곤 했다.
그때 우리를 가르치시던 그 많은 선생님들이
교장이 되고 교육장이 되고 무엇이 되었다는데
누구도 황 선생님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버드나무 가지처럼 흔들리던
황선생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아득히 살아
자라서 우리가 선생이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정성스레 교실문을 열며
굳고 단단한 몇 개의 글자 위해 몸 깎다
백묵처럼 부러지고 싶을 때
황선생님은 눈록색 버들잎 주렁주렁 흔들며
아침안개 엉긴 창 안을 기웃대고 계셨다.
해마다 사월 명지바람 부는 때
버드나무잎으로 흔들리고 계셨다.
- 『고두미 마을에서』(창작과비평사, 1985)
사월 그날이 오면 마당조회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혁명공약 몇 줄이
책의 등짝마다 낙인처럼 박혀나오던 시절인데
까까머리들 모아놓고
교장선생님은 황 선생님을 조회단에 부르셨다.
대학 다니시던 때 맨주먹 총부리에 까이우며
몸 분지른 선생님이라 하셨다.
우리가 다니던 그 학교 울타리엔
유독 버드나무가 많았고
버드나무처럼 몸이 가는 황 선생님은
조회단에 오르셔서 느리고 느린 사투리로
차돌만하게 보이는 주먹을 들고
몇 번인가 자유라는 말씀을 하셨고
운동장 조회가 끝나고 사회시간이 되어서도
한 시간 내내 그 말씀만 더 하시곤 했다.
그때 우리를 가르치시던 그 많은 선생님들이
교장이 되고 교육장이 되고 무엇이 되었다는데
누구도 황 선생님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버드나무 가지처럼 흔들리던
황선생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아득히 살아
자라서 우리가 선생이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정성스레 교실문을 열며
굳고 단단한 몇 개의 글자 위해 몸 깎다
백묵처럼 부러지고 싶을 때
황선생님은 눈록색 버들잎 주렁주렁 흔들며
아침안개 엉긴 창 안을 기웃대고 계셨다.
해마다 사월 명지바람 부는 때
버드나무잎으로 흔들리고 계셨다.
- 『고두미 마을에서』(창작과비평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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