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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땅끝에서/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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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1회 작성일 2025-04-14 11:41:5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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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에서/도종환

쏟아지는 빗줄기 피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마음도 물에 젖은 떡 덩어리처럼 뭉개져
사라져버리라고 방파제에 앉아서
밤새 젖어 소리쳤습니다

그대 사라지고 난 날부터 흔적 없이 사라져
그대 그림자도 만나지 못하던 날부터
낙엽이 지고 눈발 몰아치고 꽃 지고
다시 나뭇잎이 무성해도 산에도 거리에도
그대 없는 날 길어져

그대 없어  껍데기뿐인 몸 길바닥에  팽개치고
잘근잘근 씹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러다 다시 오물 속에 섞여 더렵혀진 편지를 펴듯
구겨진 나를 찾아다 펼쳐놓고

다시 시작하자고 다시 살아보자고
초점을 잃어 세상이 잘 보이지  않는 눈을
손등으로 문지르고 또 문지르며 땅끝까지  달려와
진경산수화로 그린 듯한 아름다운 섬 바라보다가
바라보고 바라보아도 그대 보이지 않아

밤새도록 젖어서  젖은 노래 바다로 띄워 보내고
돌아오지 말라고 다시 내게 오지 말라고
노래에 실어 어둠 속에 흘려 보내고
처절하게 젖어서 비참하게 젖어서

-  『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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