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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향림] 금낭화/노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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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6회 작성일 2025-04-14 15:29: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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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낭화/노향림

아주 작은 노리개만 보면 붉은 금낭화 떠올리네.
꽃을 좋아한 어머니는 햇볕에 탄 거친 손으로
해묵은 텃밭에다 온통 금낭화를 심어놓았지.
가난한 식구의 세끼 식사 중 한 끼는
밥 대신 금낭화 풀죽을 떠먹었네.

종일 밭에서 따 온 꽃줄기를 데쳐 찬물에 우려내
나물로 무쳐 먹거나 죽을 쑤어 먹던 시절
금낭화 붉게 꽃피우는 내 속은 자주 울렁거렸네.
굶는 것보다야 나아야,
어머니의 말씀 한 번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네.

말라리아라는 돌림병이 돌았을 때
열에 떠서는 눈앞이 빙글거려 걸을 수가 없었지.
노랗고 쓴 금계랍 알약으로 열을 내리곤 했네.
머리카락이 뭉텅 빠져서 시든 내 민머리 위로
무심코 지나는 뭉게구름만 낮게 주저앉았네.

그해 늦가을이 지나 폭설이 내리는
한겨울의 하늘도 노랬지.
굶는 것보다야 나아야,
이 말이 들릴 땐 지금도 금낭화
주머니 속에서 오래된 금빛 노리개처럼
하늘 노랗던 기억을 굴려보다 꺼내보곤 하네.

 - 노향림,『바다가 처음 번역된 문장』(실천문학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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