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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향림] 시간/노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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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0회 작성일 2025-04-14 15:26:0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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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노향림

철거 중인 수인선 폐선로가
뻘밭 속에 파묻혀 있다.
제 살 속에 완강하게 끌어안고
집착처럼 버티는 동안
모든 길은 이 개펄에서 끊긴다

빗속에서 뒷걸음질 치는 농게 몇마리
뚫린 입으로 게거품을 뿜어 올린다.
흐린 하늘을 가득히 띄운다.

수차가 부서진 채 나뒹굴고
바닥에 귀 대어보면
시간이 팽팽하게 걸러지는 소리
소금들이 체중을 내리는 소리

바람이 딱새 몇마리
수평선 위에 가볍게 내려놓는다

그 너머 햇살 맑은 바다에서
온종일 마룻장 삐걱이는 소리가 들린다.
옛 물길 거슬러오다가 발 헛디딘 허공이
밤도둑처럼 흥건히 잠겨 있다

몸부림치지 않고는 한발짝도
건너뛸 수 없다고
뻘밭 속에 탈선한 고통 몇량이
더듬 더듬 느리게 얼굴 지운다.
소래포구가 저를 지운다.

-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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