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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종점 하나 전/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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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8회 작성일 2025-04-14 11:25:0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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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 하나 전/나희덕

집이 가까워 오면
이상하게도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깨어 보면 늘 종점이었다
몇 남지 않은 사람들이
죽음 속을 내딛듯 골목으로 사라져가고
한 정거장을 되짚어 돌아오던 밤길,
거기 내 어리석은 발길은 뿌리를 내렸다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쳐
늘 막다른 어둠에 이르러야 했던,
그제서야 터벅터벅 되돌아오던,
그 길의 보도 블록들은 여기저기 꺼져 있었다
그래서 길은 기우뚱거렸다
잘못 길들여진 말처럼
집을 향한 우회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희미한 종점 다방의 불빛과
셔터를 내린 세탁소, 쌀집, 기름집의
작은 간판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낮은 지붕들을 지나
마지막 오르막길에 들어서면
지붕들 사이로 숨은 나의 집이 보였다

집은
종점보다는 가까운,
그러나 여전히 먼 곳에 있었다

- ​『그곳이 멀지 않다』(문학동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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