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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겨울 산에 가면/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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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2회 작성일 2025-04-14 10:37:2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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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에 가면/나희덕

겨울 산에 가면 밑둥만 남은 채 눈을 맞는 나무들이 있다.
쌓인 눈을 손으로 헤쳐 내면
드러난 나이테가 나를 보고 있다.
들여다볼수록
비범하게 생긴 넓은 이마와
도타운 귀, 그 위로 오르는 외길이 보인다.
그새 쌓인 눈을 다시 쓸어내리면
거무스레 습기에 지친 손등이 있고 신열에 들뜬 입술 위로
물처럼 맑아진 눈물이 흐른다.
잘릴 때 쏟은 톱밥 가루는 지금도
마른 껍질 속에 흩어져
해산한 여인의 땀으로 맺혀 빛나고,
그 옆으로는 아직 나이테도 생기지 않은
꺾으면 문드러질 만큼 어린것들이
뿌리박힌 곳에서 자라고 있다.
도끼로 찍히고베이고 눈 속에 묻히더라도
고요히 남아서 기다리고 계신 어머니,

눈을 맞으며 산에 들면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바라보는
나이테가 있다.

- 『뿌리에게』(창작과비평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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