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국밥 한 그릇/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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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한 그릇/나희덕
- 故 이문구 선생님을 생각하며
아무래도 오늘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전화를 받고 역으로 달려갔다.
배가 고팠다.
죽음의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느낀 것이 시장기라니,
불경스럽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팠다.
기차시간을 기다리며 허겁지겁 먹어치운
국밥 한 그릇.
벌건 국물에 잠긴 흰 밥알을 털어넣으며
언젠가 下棺을 지켜보던 산비탈에서
그분이 건네주신 국밥 한 그릇을 떠올렸다.
그를 만난 것은 주로 장례식에서였다.
초상 때마다 護喪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온* 그가
이제는 고단한 몸을 뉘고 숨을 내려놓으려 한다.
잘 비워낸 한 생애가 천천히 식어가는 동안
그가 마지막으로 건네는 국밥 한 그릇을
눈물도 없이 먹어치웠다.
국밥에는 국과 밥과 또 무엇이 섞여 있는지,
국밥 그릇을 들고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둘러 삼키려는 게 무엇인지,
어떤 찬도 필요치 않은 이 가난한 음식을
왜 마지막으로 베풀고 떠나는 것인지,
나는 식어가는 국밥 그릇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 이문구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문학동네, 2000).
- 『사라진 손바닥』(문학과지성사, 2004)
- 故 이문구 선생님을 생각하며
아무래도 오늘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전화를 받고 역으로 달려갔다.
배가 고팠다.
죽음의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느낀 것이 시장기라니,
불경스럽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팠다.
기차시간을 기다리며 허겁지겁 먹어치운
국밥 한 그릇.
벌건 국물에 잠긴 흰 밥알을 털어넣으며
언젠가 下棺을 지켜보던 산비탈에서
그분이 건네주신 국밥 한 그릇을 떠올렸다.
그를 만난 것은 주로 장례식에서였다.
초상 때마다 護喪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온* 그가
이제는 고단한 몸을 뉘고 숨을 내려놓으려 한다.
잘 비워낸 한 생애가 천천히 식어가는 동안
그가 마지막으로 건네는 국밥 한 그릇을
눈물도 없이 먹어치웠다.
국밥에는 국과 밥과 또 무엇이 섞여 있는지,
국밥 그릇을 들고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둘러 삼키려는 게 무엇인지,
어떤 찬도 필요치 않은 이 가난한 음식을
왜 마지막으로 베풀고 떠나는 것인지,
나는 식어가는 국밥 그릇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 이문구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문학동네, 2000).
- 『사라진 손바닥』(문학과지성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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