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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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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9회 작성일 2025-04-14 10:28:4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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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나희덕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弔燈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  『어두워진다는 것』(창작과비평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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