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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편지/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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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짐꾸러미에서 나온
네 빛바랜 편지를
나는 도무지 해독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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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포도처럼 박힌 낯선 기호들,
사랑이 발명한 두 사람만의 언어를
어둠 속에서도 소리내어 읽곤 했던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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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두운 저편에서
네가 부싯돌을 켜대고 있다 해도
나는 이제 그 깜박임을 알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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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포도나무 가지처럼
내게는 더 이상 너의 피가 돌지 않고
온몸이 눈이거나
온몸이 귀가 되어도 읽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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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짐꾸러미 속으로
네 편지를 다시 접어넣는 순간
나는 듣고 말았다
검은 포도알이 굴러떨어지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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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사과』(창비,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