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릅나무를 숨 쉬다/노향림 > 나

느릅나무를 숨 쉬다/노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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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바다를 끌어안은 채
겨울 칼바람을 견디며 서 있는 그를 보았다.
이른 봄 채 녹지 않은 눈 속에서도
자홍색 만개한 으름덩굴이 제 어깨를 감싸 안아줄 때까지
제 몸속 코르크가 큰 혹 덩이로 자라나기까지
혹으로만 숨 쉬는 흑느릅나무,
나는 뿌리 드러난 그의 언 발을 슬며시 만져보았다.
단단하기만 했다.
무엇을 위해 그는 제 몸 속 감옥을
저처럼 견디고 있는 것일까.
노란 무늬 잎이 새로 돋아날 때쯤
싱싱한 생각들을 밤새 켜놓고
제 몸속에 불꽃 환하게 피울 날 올 거라는 믿음 하나로
그는 혹을 키우며 서 있을 거다.
아니, 날아다니고 있을 거다.
그런 그를 보기 위해 밤이면 꿈속처럼
나는 제주 바닷가 하늘을 날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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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향림,『푸른 편지』(창비,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