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이야기/남진우 > 나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739
어제
667
최대
3,544
전체
297,625
  • H
  • HOME

 

[남진우] 우물 이야기/남진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106회 작성일 2025-03-25 19:35:05 댓글 0

본문

우물 이야기/남진우

저녁이 되면
그 우물은 우우 낮게 울음소리를 내곤 했다
자욱한 안개가 들판을 지나 우리집 마당으로 스며들 때
집 뒤안에 버려진 우물 속에서
느릿느릿 풀려나오던 어둠
 
아무도 그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 듯
저녁 밥상에 모인 식구들은 부지런히 숟가락질만 할 뿐
어둠이 짙어갈수록
우물이 내는 소리는 더 깊어지고
 
근심 어린 얼굴빛으로 등불 아래 모여
식구들은 짐짓 먼 바다를 떠도는 새 얘기에 정신을 쏟곤 했다
흙으로 메워버린 그 우물 속에 어떤
잠들지 못한 넋이 있어 저녁마다 그토록 울음 우는 것인지
 
문풍지 떠는 소리와 함께 꿈속으로 잦아들면
멀리 불빛 깜박이는 안개 속 마을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짙어지는 안개 속에
여기저기 뒹구는 시체들 사람들은 차례로
우물 속에 몸을 던지고 서서히 집과 숲은
어둠 속에 묻혀갔다.
 
저녁이 되어도
이제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우물 옆에 서서
나는 안개가 몰려오는 먼 들판을 바라본다
한 손에 낫을 들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남자들
목을 매고 나무에 매달린 여인들
 
이 밤
내 꿈속의 우물을 피로 물들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