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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우] 도서관에서의 기도/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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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07회 작성일 2025-03-25 19:08:08 댓글 0

본문

도서관에서의 기도/남진우

 1
일찍이 한 철학자는
한 바구니의 책을 앞에 두고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굶주림을 주시옵고
일용할 굶주림?
굶주림이라면 그것은 내게 너무도 충분하다
아무리 먹어치워도 질리지 않는 탐욕의 눈빛과
어둡게 입 벌리고 있는 머릿속의 허방
허겁지겁 굶주린 눈으로 먹어치우면
글자들은 텅 빈 머릿속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어
잠시 북새통을 이루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2
책들이 달려든다
화려한 표지를 치켜세우고
현란한 광고 문구와 장엄한 저자 약력을 앞세우고
날 선 종이들이 사방에서 달려와
일제히 내 몸을 베고 찌른다
나를 읽어야 해 나를 읽어달라니까
책들이 아우성치며 내 몸을 타고 오른다
빽빽히 종이로 들어찬 몸이
책상 위에 머리를 처박고
다시 꾸역꾸역 종이를 삼킨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책을 멀리할 수 있는 자만심을 주시옵고
 
 3
매일 한 바구니의 빵 대신
한 가마의 책이 하늘 어디선가 떨어진다
떨어져
오늘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저 거대한 책더미
이를 갈며 아무리 먹어치워도 결코 줄어들지 않는
저 글자들의 산
죽은 나무의 무덤
길이 또 다른 길로 이어지듯
책은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그 끝없는 말의 거미줄을 헤치고 나아가다 보면
나는 어느덧 살진 거미 앞에 서 있다
 
 4
지금 막 도착한
바구니를 들여다본다
아,
책 대신 누군가 띄워보낸 갓난애가
빙그레 웃고 있다
반가워 들어올리면
우수수 떨어져내리는 종이 뭉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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