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지도는 아니더라도/나희덕 > 나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1,105
어제
1,164
최대
3,544
전체
335,467
  • H
  • HOME

 

[나희덕] 대동여지도는 아니더라도/나희덕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21회 작성일 2025-05-20 19:22:23 댓글 0

본문

대동여지도는 아니더라도/나희덕

대동여지도는 아니더라도
네 마음의 지도 한 장은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 격랑의 높이를
등고선 몇 개로 대신할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그릴 수는 있을 것이다
수없이 밟았지만, 끝내 밟을 수 없던 그 땅의 이름들과
오래 울음 우는 네 여울목과
잎새 뒤 은밀하게 익어가는 사과 한 알의 과수원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둥근 늪지와
마음의 갈피마다 숨겨져 있는 몇 개의 길을

혹은 네 마음의 기상도 한 장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은 어디서 낮게 불어오는지
네 슬픔과 기쁨은 어느 골짜기에서 만나는지
순한 양떼구름 몰고 어느 황혼을 찾아가는지
네 눈동자에 드리운 장마전선 언제나 걷히려는지
아마도 나는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슬픔의 끌로 새겨넣을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알 수 없는 일
그 속에서 자주 길 잃어버리는 일
내가 그린 그림 밖으로 걸어나갈 수 없다는 일

-  『그곳이 멀지 않다』(문학동네, 200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