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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마늘을 찧으며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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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8회 작성일 2025-05-20 19:21:4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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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을 찧으며 /나희덕

 김치를 담그시는 어머니 곁에서 마늘을 찧어 드린다. 어린 시절 한꺼번에 넣고 찧다가는 한 번 내리칠 때마다 대여섯 개씩 절구 밖으로 달아나던 마늘 생각이 난다. 반도 못 찧어 눈물 흘리게 만들던 마늘ㅡ 얘야, 마늘을 단번에 넣으면 튀어오르니 하나씩만 넣고 꼭꼭 찧어라. 그 말씀처럼 이제는 기술이 생기고 힘도 늘었다. 마늘 한 개 쿵, 마늘 두 개 쿵, 절구통 속에 차례로 들어가 비명도 없이 으스러지는 마늘을 본다. 탄압이란 이런 것일까. 겨냥은 정확하고도 짧게, 그러나 지속적으로, 찧는 자신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 그 속에서 마늘은 매운 제 맛도 아랑곳없이 그냥 숨죽이게 되는 것일까. 속도감까지 붙어 경쾌하기 짝이 없는 둥둥방망이 끝에서 어느새 한 대접의 마늘이 다 찧어졌다. 마지막으로 내리치는데 톡, 쏘는 기운이 눈에 와 꽂힌다. 둥둥 방망이 밑에서 절벅거리다 못한 마늘은 으스러진 몸 서로 껴안고 소리지른다.

- 나희덕, 『뿌리에게』(창작과비평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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