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향림] 소금꽃/노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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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노향림
고사목 한그루가 도요새처럼 고개를 곧추세우고 섰다. 폐염전에 오면 어린 날의 기억이 쫑긋대는 내 귀를 불쑥 잡아당겼다 놓는다. 두런두런 웅성대는 말소리들 아직껏 염전 웅덩이에 가라앉아 있나보다. 웅덩이에 빠진 하늘이 금세 눈시울 뜨겁게 저녁놀과 함께 수면을 붉게 물들인다.
그해 여름 아버지는 땡볕뿐이던 염전을 갈아엎었다. 인부들을 불러 모으던 땡땡이종은 소리 죽였고 날마다 빚쟁이들은 아버지의 멱살을 붙잡고 놓질 않았다. 탁사발이 아버지의 얼굴인지 아버지의 얼굴이 탁사발인지 술독에 빠진 그를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소금 든 바닷물을 가두지도 않았다.
그의 혀와 등에는 이내 하얀 소금꽃이 피어났다. 나뒹굴어진 수차와 갈라진 장화에도 피어났다. 만지면 손이 베일 것 같은 날카롭고 투명한 꽃, 우린 그 꽃잎들이 부드럽게 녹을 때까지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울음 잊은 도요새처럼 지내는 날이 많았다. 무시로 파랑 치는 바다가 들락거리곤 했다.
- 『푸른 편지』(창비, 2019)
고사목 한그루가 도요새처럼 고개를 곧추세우고 섰다. 폐염전에 오면 어린 날의 기억이 쫑긋대는 내 귀를 불쑥 잡아당겼다 놓는다. 두런두런 웅성대는 말소리들 아직껏 염전 웅덩이에 가라앉아 있나보다. 웅덩이에 빠진 하늘이 금세 눈시울 뜨겁게 저녁놀과 함께 수면을 붉게 물들인다.
그해 여름 아버지는 땡볕뿐이던 염전을 갈아엎었다. 인부들을 불러 모으던 땡땡이종은 소리 죽였고 날마다 빚쟁이들은 아버지의 멱살을 붙잡고 놓질 않았다. 탁사발이 아버지의 얼굴인지 아버지의 얼굴이 탁사발인지 술독에 빠진 그를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소금 든 바닷물을 가두지도 않았다.
그의 혀와 등에는 이내 하얀 소금꽃이 피어났다. 나뒹굴어진 수차와 갈라진 장화에도 피어났다. 만지면 손이 베일 것 같은 날카롭고 투명한 꽃, 우린 그 꽃잎들이 부드럽게 녹을 때까지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울음 잊은 도요새처럼 지내는 날이 많았다. 무시로 파랑 치는 바다가 들락거리곤 했다.
- 『푸른 편지』(창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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