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향림] 가을 기차/노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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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기차/노향림
협궤철로엔 바다로 가는 가을행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연착중일지 모르니 차표나 물리라고
아우성인 사람들
몇사람은 땅바닥에 멍하니 주저앉아 있고
몇사람은 철 놓친 여름 모자들을 눌러 쓰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쌜비어꽃들이 햇빛에 벌겋게 덴 손들을
들고 나앉은 울타리 너머로
갈 곳 없는 갈대밭은 녹슨 선로를 딛고 서서
무슨 일일까 궁금한 듯 고개를 내민다.
그 사이로 바람 몇량 끌려가고
지금껏 털끝만한 숨소리조차 내보내지 않는다.
정지된 시간들은 바닥 모를 깊이로 빠져들며
금이 간 얼굴을 들고 망연히 서 있다.
높이 떠오른 하늘이 가늘게 올이 나간
원단처럼 수척해지며 내려와 있다.
제가끔 몸 마르며 형형해진 사람들의 눈빛엔
담청색 바다가 숨어 있다.
수인선은 언제나 그 바다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창비, 2005)
협궤철로엔 바다로 가는 가을행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연착중일지 모르니 차표나 물리라고
아우성인 사람들
몇사람은 땅바닥에 멍하니 주저앉아 있고
몇사람은 철 놓친 여름 모자들을 눌러 쓰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쌜비어꽃들이 햇빛에 벌겋게 덴 손들을
들고 나앉은 울타리 너머로
갈 곳 없는 갈대밭은 녹슨 선로를 딛고 서서
무슨 일일까 궁금한 듯 고개를 내민다.
그 사이로 바람 몇량 끌려가고
지금껏 털끝만한 숨소리조차 내보내지 않는다.
정지된 시간들은 바닥 모를 깊이로 빠져들며
금이 간 얼굴을 들고 망연히 서 있다.
높이 떠오른 하늘이 가늘게 올이 나간
원단처럼 수척해지며 내려와 있다.
제가끔 몸 마르며 형형해진 사람들의 눈빛엔
담청색 바다가 숨어 있다.
수인선은 언제나 그 바다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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