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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밤꽃 피는 고성/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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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9회 작성일 2025-04-12 18:51:3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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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꽃 피는 고성(固城)/황동규

하지(夏至) 며칠 전
누런 보리들이 들 한가운데 밀집대형으로 버티고 서 있고
파릇한 모 자라는 무논들이 보리를 포위하고 있다.
그 너머론
바다인지 호수인지 물비늘 반짝이는 넓다란 물,
밤꽃 냄새가 사방에
투명 안개처럼 끼어 있다.

하늘의 다락 같은 문수암에 올라보면 아래 물들이 살아 있다.
물속에 머물고 있는 섬들에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 이름을 붙여주다가
조그만 외톨이 섬 하나
그가 무어라 하나 귀 기울이면 가까이서
부리 헐렁한 딱따구리가 따다다 답한다.
밤꽃 냄새가 투명 안개처럼 흐른다.

이 초여름 천지에 누렇게 익은 보리밭이 되든지
밤꽃 냄새가 되든지
따다닥 소리가 되든지
몸이 헐렁해진 나도 무언가 몸으로 되고 싶어
고성 명품 하모 횟집 앞에서 서성대다 문득 고개를 든다.
따끈한 해가 떠 있고
나지막한 산 하나 동그란 구름 한 장 띄우고 있는
푸른 파스텔 톤으로 한없이 한없이 비어 있는 하늘……
생각 같은 것 다 치아라!
하모 하모.

 ​- 황동규, 『사는 기쁨』(문학과지성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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