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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이사/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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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7회 작성일 2025-04-12 13:38:3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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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허연

​아이들이 앞바퀴만 남은 자전거를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때아닌 눈발과 함께 나선 길엔
백목련도 담쟁이도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버릴 것 버리고 쓸 만한 것들만 다시 싸 들고
성북동에서 만난 세월은
낡은 선반을 뜯어내고 있었습니다
삶은 세상의 이쪽 끝과 저쪽 끝에서
부풀리고 썩어 가는 보이지도 않는
슬픔이라고, 쏟아지는 먼지 같은 거라고

비둘기가 떠난 마을
흙탕물이 쓸려 지나간 자리엔
주저앉으며 일어서며
다시 살아가는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 『불온한 검은 피』(민음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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