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희] 당신과 바다/홍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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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바다/홍경희
허리 페우러 갔다 오켜
동트기 전에 나서 해가 중천에 올 때까지
밭일로 구겨진 당신은
물에 만 식은 밥 한술 뜨는 둥 마는 둥
바다에 들었다
돈 되는 물건이야 바다가 허락해 주는 것
자맥질마다 빈손이라도 상관없었다
쉴 새 없는 노동에 비틀린 몸을 가볍게 받아내며
넋두리를 다 들어 주곤
입 무겁게 소문내지 않아
사흘 묵힌 울음을 토해내기에도 좋았던 바다
그러고 보면
당신은 소라나 전복을 캐기 위해서만
테왁을 메고 집을 나선 것이 아니었다
이제야 겨우 눈치챈 것이지만
물질은 차라리 당신에겐 온전한 휴식이었다
약발이 잘 듣는 처방 같은 것이었다
뇌졸중이 먼바다 너울처럼 몸을 스치고 지나간뒤
다시 물질은 할 수 없게 된 당신
몸을 펴러 갔다 온다고 마당을 나서던
그 오후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바다는 당신의 몸을 언제라도 고스란히 받아안을 것이다
당신의 굽은 허리도 곧게 펴질 것이다
- 『봄날이 어랑어랑 오기는 하나요』(걷는사람, 2020)
허리 페우러 갔다 오켜
동트기 전에 나서 해가 중천에 올 때까지
밭일로 구겨진 당신은
물에 만 식은 밥 한술 뜨는 둥 마는 둥
바다에 들었다
돈 되는 물건이야 바다가 허락해 주는 것
자맥질마다 빈손이라도 상관없었다
쉴 새 없는 노동에 비틀린 몸을 가볍게 받아내며
넋두리를 다 들어 주곤
입 무겁게 소문내지 않아
사흘 묵힌 울음을 토해내기에도 좋았던 바다
그러고 보면
당신은 소라나 전복을 캐기 위해서만
테왁을 메고 집을 나선 것이 아니었다
이제야 겨우 눈치챈 것이지만
물질은 차라리 당신에겐 온전한 휴식이었다
약발이 잘 듣는 처방 같은 것이었다
뇌졸중이 먼바다 너울처럼 몸을 스치고 지나간뒤
다시 물질은 할 수 없게 된 당신
몸을 펴러 갔다 온다고 마당을 나서던
그 오후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바다는 당신의 몸을 언제라도 고스란히 받아안을 것이다
당신의 굽은 허리도 곧게 펴질 것이다
- 『봄날이 어랑어랑 오기는 하나요』(걷는사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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