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신선] 자화상을 위하여/홍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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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을 위하여/홍신선
그는 혼자 제 등짝에 채찍질을 가한다
일몰과 땅거미 직전
박모의 때에 그는 남몰래 황금채찍을 꺼내 휘두르고는 한다.
사정없이 옥죄어 오는 서너가닥 새삼기생덩굴풀로
등이나 종아리를 철썩철썩 내려치며
동통을 온몸의 감각으로 수납하며
그가 이 시간 뒤늦게 지피려는 것은 감각의 잉걸불인가 어느 훗세상의 정신인가.
한시절 그의 혼은 가열하게 맑아서
위경僞經 같은 별들에 가서 진위를 뒤지듯 말곳거리거나
살의 죄목들을 읽으려는 듯 럭스 높은 줄등들을 내걸었다.
이제 치켜들린 그의 겨드랑이께
휑한 초라한 허공이 흉갑처럼 입혀져 있고
힘겹게 마음에서 풀어준 숱한 말의 새끼새들
고작 그의 우듬지께 가서 처박혀 있다.
매일 그는 그 시간에
등판에 허벅지에 동통을 내리찍으며
시간들이 쉴새없이 치고 넘어간
으깨진 시신들처럼
욕망의 설마른 바늘잎들을 떨구고 섰다.
벗어 놓으면 언젠가 다시 젊어질
조막손만한 적요들을.
혼신의 기를 모아 서서
장좌불와로 기대어 자며 깨며
생각의 새로운 수태를 기다리는
이 세속에서의 실성실성하는 숨은 어디쯤서 끝나는가
노란 새삼 기생덩굴풀로 현수포를 쓴 지빵나무
고사목 한 그루,
중세 고행자같이 제 몸과 마음을 치다가 쉬다가
졸다가 깨다가……
- 『자화상을 위하여』(세계사, 2002)
그는 혼자 제 등짝에 채찍질을 가한다
일몰과 땅거미 직전
박모의 때에 그는 남몰래 황금채찍을 꺼내 휘두르고는 한다.
사정없이 옥죄어 오는 서너가닥 새삼기생덩굴풀로
등이나 종아리를 철썩철썩 내려치며
동통을 온몸의 감각으로 수납하며
그가 이 시간 뒤늦게 지피려는 것은 감각의 잉걸불인가 어느 훗세상의 정신인가.
한시절 그의 혼은 가열하게 맑아서
위경僞經 같은 별들에 가서 진위를 뒤지듯 말곳거리거나
살의 죄목들을 읽으려는 듯 럭스 높은 줄등들을 내걸었다.
이제 치켜들린 그의 겨드랑이께
휑한 초라한 허공이 흉갑처럼 입혀져 있고
힘겹게 마음에서 풀어준 숱한 말의 새끼새들
고작 그의 우듬지께 가서 처박혀 있다.
매일 그는 그 시간에
등판에 허벅지에 동통을 내리찍으며
시간들이 쉴새없이 치고 넘어간
으깨진 시신들처럼
욕망의 설마른 바늘잎들을 떨구고 섰다.
벗어 놓으면 언젠가 다시 젊어질
조막손만한 적요들을.
혼신의 기를 모아 서서
장좌불와로 기대어 자며 깨며
생각의 새로운 수태를 기다리는
이 세속에서의 실성실성하는 숨은 어디쯤서 끝나는가
노란 새삼 기생덩굴풀로 현수포를 쓴 지빵나무
고사목 한 그루,
중세 고행자같이 제 몸과 마음을 치다가 쉬다가
졸다가 깨다가……
- 『자화상을 위하여』(세계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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