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호] 춘자 누나/최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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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자 누나/최동호
春子가 와서 너를 업어주던 때가 아마 열두 살이었을 게야…… 그 아이 아버지가 찾아와 하도 먹을 것이 없다고 해 끼니라도 때우라고 거두어 주었는데, 어린 것이 남의 집에 와 힘들었겠지…… 갑자기 기억도 아스라한 열두 살 계집아이 앙당한 등이 담쟁이 줄기처럼 선하게 떠오르고 칭얼대다 잠들던 어린 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春子 그 아이도 벌써 반백의 할머니가 되었다고 하드라지…… 어머니의 말끝이 어둑해졌다…… 늦잠을 깨웠다고 투정부리다 엄마에게 야단맞고 허둥거리며 아침 늦게 학교에 간 단발머리 딸아이는 이제 열두 살! 칭얼거리던 나를 달래던 열두 살 계집아이의 한 뼘 앙당한 등이 투정부리던 아이의 뒷모습에 겹쳐 안스럽게 따뜻했다.
아버지 가시고 고독의 무게로 더욱 허리가 굵어진 어머니와 오랜 세월의 말벗처럼 단풍잎 다 떨어진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겨울바람의 차가움이 살풋 이마에 감도는 늦은 가을 저녁 철없는 어린시절 나를 등에 업어주던 春子 누나의 세상살이 이야기가 어스름 연기처럼 골목길 돌아 나와 어두워지는 거실 바닥에 낮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애잔한 어둠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 『불꽃 비단벌레』(서정시학, 2009)
春子가 와서 너를 업어주던 때가 아마 열두 살이었을 게야…… 그 아이 아버지가 찾아와 하도 먹을 것이 없다고 해 끼니라도 때우라고 거두어 주었는데, 어린 것이 남의 집에 와 힘들었겠지…… 갑자기 기억도 아스라한 열두 살 계집아이 앙당한 등이 담쟁이 줄기처럼 선하게 떠오르고 칭얼대다 잠들던 어린 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春子 그 아이도 벌써 반백의 할머니가 되었다고 하드라지…… 어머니의 말끝이 어둑해졌다…… 늦잠을 깨웠다고 투정부리다 엄마에게 야단맞고 허둥거리며 아침 늦게 학교에 간 단발머리 딸아이는 이제 열두 살! 칭얼거리던 나를 달래던 열두 살 계집아이의 한 뼘 앙당한 등이 투정부리던 아이의 뒷모습에 겹쳐 안스럽게 따뜻했다.
아버지 가시고 고독의 무게로 더욱 허리가 굵어진 어머니와 오랜 세월의 말벗처럼 단풍잎 다 떨어진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겨울바람의 차가움이 살풋 이마에 감도는 늦은 가을 저녁 철없는 어린시절 나를 등에 업어주던 春子 누나의 세상살이 이야기가 어스름 연기처럼 골목길 돌아 나와 어두워지는 거실 바닥에 낮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애잔한 어둠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 『불꽃 비단벌레』(서정시학,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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